Q 맞벌이 부부인 아내와 저는 집안의 반대를 넘어 무려 5년이 넘는 연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현재 다섯 살 된 아이가 하나 있고 그 일이 있기까진 별 탈 없이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작년부터 우리 집 근처에 사는 회사 동료와 함께 카풀로 출퇴근을 했는데 점점 저에게 냉담해지고 부쩍 아이에게 짜증도 내더니 결국 지난가을에 카풀하는 상대인 기혼남 동료와 바람피우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추궁했을 때 아내는 얼마 되지 않았고, 저에게 미안하다며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 후 또 제게 거짓말을 하고 그 남자를 만난 사실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또 한번 빌었죠. 한데 또 한 달 후 이번에는 새벽에 그 남자의 아내한테 연락이 와 한바탕 난리 났었습니다. 그 후 정리된 듯합니다. 그 뒤 아내를 못 믿게 되었고 이혼도 생각했어요. 한데 아이를 보면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더군
요.
최근 아내는 저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두 번 울며 사과했요. 전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가끔씩 혼자 우울합니다. 가령 오늘처럼 상처가 불쑥 솟는 날에요. 왜 그러냐 아내가 계속 묻기에 그 일 때문이라고 냉랭하게 말하니 ‘언제까지 그 일 얘기하며 살 거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혼자 삭이려다 보니 몸의 병도 얻었어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몸이 아프다니 술 한잔 따라드릴 수도 없고 맞바람 피울 상대가 되어드릴 수도 없고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저 역시도 ‘불혹’이 쉽지만은 않은 한 취약한 인간으로서 지극히 사적인 의견을 보태봅니다.
먼저, 배우자가 있음에도 연애를 하는 것은 감기에 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나도 한번 바람 좀 피워보자고 해서 목 내놓고 기다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훌쩍 외출했다가 불현듯 걸리는 감기바이러스 같은 것… 물론 바람직하진 않지만 감기니까 처음부터 계산하거나 예상하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상습범 제외). 초범들의 ‘의도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부분은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하긴 이런 연애 했던 분들, 저 멘트 한 번씩은 써먹었었죠.
감기에 걸린 후가 문제인 거죠. 어떻게 치료하느냐의 문제인데 연애감정에 휘말려 열정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거기서 스톱하느냐, 아니면 의지를 가지고 계속하느냐는 스스로를 규제하는 힘에서 나오는 겁니다.여기서 그다음부턴 ‘운명’ 같은 단어를 감히 써서는 안 되지요. 다들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운명은 좀더 무자비한 것이고 기본적으로 불륜하는 여자들(혹은 남자들)은 불륜을 그냥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와이프는 불안감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해왔던 것이지, ‘어쩔 수 없었던’ 건 아니라는 거지요. 그 남자와 금단의 관계를 맺으면서 어쩌면 예전 당신과 공유했던 힘겨운 사랑을 문득 추억하지나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요, 당신 와이프 참 나빠요.
하지만 현재의 우울함과 슬픔의 원인은 이미 다른 차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남편으로서, 남자로서의 배신감과 질투와 자격지심을 넘어 인간으로서 실망스럽고 노여운 겁니다. 이런 일을 겪고도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아내의 이기적인 뻔뻔함, 사랑한다면 나를 한 번은 용서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관계의 열쇠를 남편에게 던져버리는 무책임함이 골을 지르고 위염을 도지게 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제멋대로지만 그래도 그 이기적인 행동들에 책임을 지려 하기 때문에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상처 줄 가능성을 안고서도 저지르는 불륜처럼 이기적인 형태의 사랑은 없지요. 그렇다면 그 책임, 기꺼이 져야 합니다. 불륜은, 들통 났을 때 이혼당할 것을 각오하는 사람만이 해야 하는 것이죠. 가정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바람피우는 것은 너무나 오만하고 이기적입니다. 추궁을 당했을 때 ‘다 솔직히 고백했으니 이젠 용서해주세요’도 있을 수 없지요. 본인은 똥 시원하게 싸놓고 상대 보고 그 똥 끌어안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라는 거잖아요. 차라리 그보다는 어떻게든 잡아떼며 부정하는 걸로 보답해야 마땅합니다. 그간의 비밀연애로 점철된 거짓말 인생, 무덤까지 갖고 가기 전까지 그 찜찜함이 마음을 좀먹더라도 ‘혼자’ 감내해야 했던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 일 얘기하며 살 거냐’고요? 아내분은 뭘 모르시는군요. 하고 싶은 만큼, 해버려야 할 만큼 정면으로 다 하고 있는 동안에는 최후의 선택은 뒤로 미뤄지고 있는 건데. 계속 못 미더워하고 비난하고 질책하고 괴롭히는 동안에는 아직은 애정이 남아 있는 건데. 그럼에도 점점 두 사람만의 고립된 외딴섬이 생기면 남편 혼자가 아닌 ‘부부’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지요. 분이 풀릴 때까지 견뎌내며 받아주고, 상담에 동반하는 것은 배우자의 약속을 어긴 쪽이 감내할 책임이고요. 믿음 빼면 정녕 부부는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는 걸까요? 당신이야말로 제게 좀 알려주세요. 부디 욱해서 맞바람만은 피우지 마시길. 그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건 그녀가 내심 바랄지도 모르는 그녀 마음 최고로 편하게 해줄 용서의 행위니까.
임경선 칼럼니스트